2015년은 19년 제 인생에서 어쩌면 처음으로 맛 본 엄청난 좌절과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…. 겪어보기 전엔 상상하지도 못 할 만큼이요. 저는 정시까지 가게 된 제 자신이 너무 미웠어요.ㅠㅠ 두 번째로 간 서울예대 시험장은 수시 때와는 달랐습니다. 아름답게만 보이던 예대의 캠퍼스는 추운 날씨 탓인지 꽝꽝 얼어있는 것 같았어요. 뭐, 날씨 탓이 아니라 제 자신의 상태가 그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. 제가 지원한 영화과 수능 미반영 전형은 정시 경쟁률이 82:1 !!!! 이었기에 저는 원장 선생님께 늘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냥 내려놓고 시험을 쳤었습니다. 일렬로 쭉 앉아계신 교수님들의 그 관심 없는 듯한 표정들에 완전 압도당했고. 수시 때와는 달리 제 자신감은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기에 글을 쓸 때나 면접 내내 그냥 기가 죽어있었어요. 시험장에 나오자마자 울음이 왈칵 터졌습니다. 원래 시험이 끝나고 나면 곧바로 선생님들께 조잘조잘 거리면서 전화로 후기를 말씀드리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. 그렇게 저는 정시 때 5개 지원한 학교에서 3개만 시험을 치르고 그냥 제 고향으로 훌쩍 내려왔어요. 저는 집이 경상도라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며 수업을 들었었는데 정시 내내 지독한 불면증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어요. 매일 가위에 눌리기도 하고.. 흑.. 그렇게 내려간 고향에서 저는 모든 걸 다 잊고 재수를 해야겠다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. 그날이 알바 첫날이었어요. 한창 소처럼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가게 안으로 엄마가 들어오셨어요. 그러고는 핸드폰을 보여주시는데 거기에 서울예대 합격화면이 떠 있었어요. 원래라면 1월 28일 발표인데 수시 때처럼 또 일주일씩이나 조기발표를 했더라구요. 정말 믿어지지 않아서 계산대 앞에 서서 두 손으로 입을 막고는 크게 “말도 안 돼.. 내가!?” 라고 외쳤어요. 알바중이라 핸드폰을 못 보니까 연락이 불통된 상태였죠. 원장선생님께 엄마가 소식을 전해 받고는ㅋㅋ 기쁜 마음에 엄마가 버스를 타고 달려오셨던 거였어요.ㅋㅋ다시 그때를 떠올리니 저절로 웃음이 나네요. 그렇게 면접도 못 보고 시험장 나오자마자 울었다면서 어떻게 붙었는지 의아하시죠? 저도 그랬어요. 그래서 원장 쌤 이랑도 전화하면서도 진짜 왜 붙었는지 모르겠다고.. 막 그랬는데… 이제는 알겠어요!
저는 고향이 경상도라서 학원을 다니기 위해서는 집을 떠나서 생활했어야 했어요. 학교에 다닐 땐 주말 반을 하면서 수업을 들었고 여름 방학 때와 정시기간에는 계속 서울생활을 했었죠. 저는 5월부터 씨네 학당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진짜 이건 제게 신세계였어요. 제 고향에는 뭐 같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눌 사람도, 또 영화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. 또 제가 고향에 있을 때 그냥 영화가 너무 찍고 싶어서 그냥 맨땅에 헤딩하듯이 영화를 그렇게 찍어왔었는데 학원에 가면 제가 부족했던 부분들을 다 배울 수 있었어요. 꿈이 같은 친구들이랑 같이 어울리고 또 선생님들한테 영화도 배우니까 너무 신났어요. 진짜. 버스로 4시간씩 걸리는 거리를 오가며 전 진짜 힘든 줄도 몰랐죠. 다들 막 고생한다.. 이러면서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었는데 전 오히려 좋았어요.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면 학교 친구들이랑은 얘기도 안하고 혼자 영화보고 숙제하면서 빨리 학원에 갈 날만을 기다렸죠. 이건 사람마다 다른데 저는 엄청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어서.. 숙제를 많이 내주면 많이 내줄수록 좋아했고 뭐든지 다 하고 싶어서 안달이었어요.ㅋㅋ원장 쌤을 비롯한 다른 선생님들은 다 저를 보면서 너무 열심히 한다며 막 걱정을 하실 정도였어요. 하지만 그 열심히 하고 뭐든 하고 싶어 하던 제 욕심이 아무래도 수시에서는 안 좋게 작용되었어요. 한꺼번에 많은 학교를 다 준비하다보니까 하나의 방식에 집중하지도 못 했고.. 또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들이 저를 입시생으로써가 아니라 진짜 영화학도로써 대해주셔서 제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그 창작들을 많이 지켜주셨어요. 근데 입시스타일 대로 시험을 치뤘어야 하는 건데 전 그렇게 못 했던 거죠. 그게 입시방식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수시에서 낙방 했던 거 같아요. (입시하기 전에 이런 건 한번 생각 해 보시는 게 좋아요. 내 창작은 소중하고 고귀하지만 입시 할 때만큼은 그것들을 잠시 내려놓는 거죠.)
그렇게 11월 한 달간 다시 고향에서 지내며 저는 다시 씨네 학당으로 가야할지 말지를 정말 고민을 했어요. 학원이 좋았지만 어쨌든 좋지 못한 결과를 얻었던 건 사실이니까 다시 그곳에서 준비를 해도 될지가 두려웠죠. 그래도 다시 학원으로 돌아갔던 건 어떻게 보면 ‘정(情)’ 때문이었어요. 제가 고향에서 생활하는 평일에도 늘 전화 오셔서 면접 봐주시고, 시험 전날엔 해 뜰 때까지 저를 봐주시던 원장선생님이 생각이 많이 났어요.ㅋㅋ또 저는 학원 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공부를 한다는 게 상상이 안됐어요. 정시는 수시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래도 수업이 재밌었어요. 정시 때 처음으로 원장선생님과 수업을 하게 됐었는데 입시위주로 그냥 때려 박는 수업이 아니라 각종 인문학적 지식들을 곁들인 선생님 식 서울예대 수업이 제게 너무 잘 맞았어요. 영화를 하려면 정말 철학이나 인문학 분야의 지식이 풍부해야 하다고 생각했거든요. 그랬기에 저는 늘 그런 지식을 습득하는데 목말라있었는데 수업 듣는 내내 막 갈증이 해소되는 거처럼 좋았죠. 사실 제가 정시 때 그 경쟁률을 뚫고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선생님을 믿었던 거에 있었어요. 그 믿음에는 선생님이 저를 ‘존중’ 해주셨던 게 있었죠..ㅎ 쌤은 저를 오래 지켜보셨으니 제가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 다 알고 계셨어요. 또 어떻게 해서든 저의 방식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 해 주셨던 거 같아요. 제가 서울예대 입시글로 썼었던 글이 단순한 주제가 아니었고 제가 평소에 관심이 많던 그런 주제였거든요. (휴머니즘을 한번 비꼬아 보는.) 쌤이 그걸 아시고는 딱 캐치하셔서 이끌어 주셨던 거 같아요. 그래서 제 합격은 그냥 어떤 기적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일도 아닌. 정과 노력의 결과였습니다. 또 진짜 입시는 ‘운 빨’ 인 것이 예대 시험방식이 수시 때와는 달리 사진이 세장이 나오고 마지막 사진은 백지로 나왔더라구요. 다들 멘붕에 빠진 그때 사실 저는 좀 좋았어요.ㅎㅎㅎ 왜냐면 바뀐 그 방식이 저는 더 쉬웠거든요. 흐흐..
합격하고 나서 수만휘 같은 곳에서 쪽지도 많이 받았고 주위에 영화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질문을 많이 받았었어요. ‘그동안 어떻게 준비했어요?’, 라던가 ‘어떤 글 쓰셨어요?’ 식의. 저는 제가 다 대답해줄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?! 근데 막상 답변을 하려고 하는데 말문이 턱 막혔어요. 어떻게 준비했는지 물으신다면.. 모르겠어요. 이건 그냥 마음가짐의 차이인 거 같아요.. 특히나 저처럼 지방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그 마음가짐이 더 다르겠죠. 또 영화에 대한 본인의 마음가짐이 얼마 만큼인지를 생각해보는 게 중요 한 거 같아요. 저는 입시 내내 일기를 썼어요. 지금 입시 때만 쓴 일기가 한 다섯 권은 되는데. ‘정말 힘들다..지친다.’ 라는 말은 수 없이 적혀있어도 절대 영화 하기 싫다. 라는 글은 없었어요. 진짜 다 떨어지고 힘들었을 때도 절대 영화에 대한 제 의지는 꺾이지 않았던 거 같아요. 오히려 계속 더 하고 싶어지는..?
아! 또 제가 정시까지 학원에서 계속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거에는 내가 씨네 학당을 계속 다니면 언제든지 영화를 찍을 수 있겠구나. 라는 거였어요. 저는 영화 제작하기를 정말 좋아해서 입시 기간에도 두 편정도 영화를 만들었거든요. 그때 학원 컴퓨터로 편집하고 또 선생님이 옆에서 봐주시기도 하셔서 그런 제작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정말 좋았어요.ㅋㅋ또 학원 안에서도 아이들이 제작을 많이 하는 편인데 밤샘하면서 같이 작품 만들고 하는 그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. 덕분에 정시 때도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서 짧은 영화한편 뚝딱 만들었죠. 뭔가 그 영화에 있어서 자유로운 분위기가 참 좋았어요. 또 원장 쌤이 편집을 워낙 잘하셔서 옆에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재미도 있었고..ㅋㅋㅋㅋㅋ
저는 지금의 제 자신이 좀 놀라워요. 이렇게 많이 변하다니.. 엄마를 비롯한 제 주위친구들은 다들 저보고 현실감각이 없다고.. 어딘가 꿈속에서 사는 거 같다고 그랬었어요. 근데 입시를 치르고 난 후 지금의 저에게 한 친구가 그러더라구요. ‘니 진짜 변했다.. 이제 좀 어린애 안 같다.’ 지금도 뭐 성숙해지려면 한참 멀었지만 직접 깨지고 고생도 좀 해보고 한 후의 제 자신은 진짜 예전과는 다른 거 같아요. 또 저는 사람을 잘 안 믿었어요. (뭐 대다수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..) 특히 어딘가에 ‘소속’되는걸 정말 싫어했어요. 의리를 지키고, 정을 믿고 그런 게 정말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 입시를 치르면서 그런 부분들이 변했던 거 같아요. 결국엔 어딘가에 소속되었고 의리와 정을 지켰기에 합격! 한 거니까..~~
이제 슬슬 제 긴 글을 마무리 할 때가 온 거 같군요. 제 합격수기를 읽고 계실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한 가지 있는데요. 만약 씨네 학당을 다니 실거라면 저를 자주 보실 수 있을 거 에요!! 왜냐면 제가 시간 날 때마다 학원에 찾아가서 여러분들에게 조잘조잘 거리며 도움을 드릴 거거든요. 제가 아는 거 최대한 다 끌어내서 도와 드릴마음이 있어요. 왜냐면 저도 입시할 때 학원에 찾아온 선배들께 도움을 많이 받았고.. 또 그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기 때문에요. 받았으니 이제 나눌 차례네요. 오늘은 집에 돌아오니 서울예대 합격통지서가 배달되어 있었어요. 어제는 등록금을 넣었고요. 이제 곧 기숙사 발표도 나겠군요! 정말 기쁘고 좋습니다. 아. 그리고 묵묵히 제 뒷바라지 해주셨던 저희 부모님에게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를 표합니다. 이제 제가 다 갚아다가야죠. 아무튼 끝으로 .. 원장 쌤이 제게 하셨던 말을 하나 던지겠습니다. “너는 82:1의 그녀다!!” (숫자가 페데리코 펠리니 8과 2분의 1이 떠오르지 않나요? 흐흐.) ㅋㅋㅋㅋ감사합니다. 사랑합니다. 사랑 하세요~
